프레임의 힘
아프리카 오지 여행을 가서 듣도 보도 못한 동물을 만나거나, 한 중학생이 책을 읽다가 생소한 철학 용어를 보았다고 하자.
우리의 뇌는 이처럼 어떤 대상이나 개념을 처음으로 접하면, 그것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모르던 것도 한번 알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그것을 다시 인식하는 데 시간이 짧게 걸린다.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5퍼센트에 불과하지만, 에너지의 20퍼센트를 쓴다고 한다. 뇌가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고 생각을 하는 데는 이처럼 힘이 많이 든다. 그래서 인간은 힘을 적게 들이고 효율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생각을 처리하는 방식을 공식처럼 만들려고 한다.
프레임(frame)은 '기본 틀, 뼈대'라는 뜻이다. 쉽게 말해 '생각의 기본 틀'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생각을 쉽게 처리하기 위해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프레임은 아이디어나 개념을 구조화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하며, 행동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사람들은 보통 프레임이 굳혀지면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던 기존 프레임을 바꾸지 않고 지키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때 그 프레임이 틀렸다며 사실이나 진실을 나열해봤자 거의 달라지지 않는다.
프레임을 새로 조직하는 것은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새로운 프레임을 만드려면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우선 다르게 말해야 한다.
프레임을 이용한 사례 1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부자들의 편에 서서 상속세를 줄이자고 주장했다.
레이건은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해 상속세를 '죽음세'라고 표현했다. 상속세는 죽은 다음에 재산을 물려줄 때 붙는 세금으로 당연히 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죽음세'라고 하면, 왠지 '죽어서까지 세금을 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가난한 이는 물려줄 재산이 없으므로 상속세를 줄이는 것은 부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가난하면서도 '죽음세'라는 말의 프레임에 갇혀서 상속세를 줄이자는 정책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가난한 자신에게 불리한 정책인데도 말이다.
프레임을 이용한 사례 2
1941년 12월 일본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하면서 서태평양을 중심으로 전쟁이 벌어졌다. 우리는 이 전쟁을 '태평양 전쟁'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군대, 언론은 이 전쟁을 '대동아 전쟁'이라고 불렀다. 대동아(大東亞), 즉 전쟁 앞에 '커다란 동아시아'라는 말을 붙여서, 참혹한 '침략 전쟁'을 동아시아의 '번영을 위한 전쟁'이라는 프레임으로 만들었다.
일본 국민들은 일왕과 정부가 만든 '대동아 전쟁'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자살 특공대가 되어 미국 하와이의 진주만으로 날아갔다.
프레임은 이처럼 힘이 세다. 그러다 보니 정치인, 정부, 언론은 프레임을 먼저 손에 넣으려고 한다.
한 유명한 정치가는 정치란 결국 '프레임 전쟁'이라고 했다. 누가 어떤 프레임을 만들어 프레임 전쟁에서 승리하느냐의 문제라고 한다.
요즘 대선투표를 앞두고 양대 정당이 각자 프레임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프레임 씌우기는 한편으로는 저급해 보이기도 하다. 네거티브 프레임 씌우기는 더 이상 선거판에서 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 우리가 살아가면서 프레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의 가치와 정체성을 담을 프레임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더 많은 문제와 영역을 우리의 가치로 해석하고, 그 프레임을 행동과 목소리를 통해 반복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의 프레임이 바뀌게 되고 인식이 변할 수 있다.
프레임을 바꾸려면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고,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며, 다르게 말해야 함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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