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과 사회진화론
1859년 다윈이 「종의 기원」이란 책에서 진화론을 발표하자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인간이 원숭이와 똑같은 조상한테 갈라져 나왔다면, 원숭이와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는 무엇인가?
다윈의 학설을 뒷받침할 화석이 부족하다!
그러나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수도사였던 멘델은 완두콩을 교배시키며 유전법칙을 찾아냈고 이는 다윈의 진화론을 뒷받침했다. 이후에는 1869년에 독일의 화학자 프리드리히 미셔가 박테리아에서 유전자의 본체인 DNA와 관련된 물질을 발견했다.
1925년 미국에서는 '원숭이 재판'이라고 불리는 법정 논쟁이 일어났다. 그 무렵 진화론이 과학적 이론으로 정립되어 가고 있었으나, 기독교인이 많은 미국에서는 여전히 창조론이 우세했다.
그러던 차에 1920년대 미국 테네시 주에서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버틀러법이 통과되었다. 이에 반대한 스콥스라는 교사가 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는데, 그러나 법정은 창조론의 손을 들어주었고 진화론을 가르쳤던 스콥스는 벌금형을 받았다.
그 후 1968년에 진화론 교육을 금지하는 것이 연방헌법에 어긋난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버틀러법은 폐지되고, 진화론은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같은 해에 제임스왓슨과 프랜시스크릭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했다. 이처럼 유전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생물의 설계도인 DNA가 발견되면서 진화론은 점차 굳건히 확립되었다.
1987년에는 진화론을 가르친다면 창조론도 가르쳐야 한다는 주법 역시 헌법에 위배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사실상 인류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정설로 진화론이 인정받은 셈이다.
다윈의 진화론 가운데 핵심인 '적자생존', 그리고 종의 분화를 통하여 새로운 종이 탄생하고 다채로운 생태계를 이루어 나간다는 '자연선택'에 의한 종의 기원의 원칙은, 이제 현대 인류의 종을 설명하는 과학적인 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과학이 종교와 결합하면 사람들을 억압하기도 하지만, 과학이 정치와 결합하면 무기가 된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수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드는 것을 마땅하고 바른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그 구실로 다윈의 진화론을 끌어왔다. 제국주의자들이 주목한 진화론의 원리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였다.
생명체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한다.
진화는 일정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19세기 영국의 철학자인 허버트스펜스는 사회진화론을 주장했다. 그의 주장 이렇다.
인간사회도 유목사회에서 농경사회, 산업사회 식으로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로 발전한다.
인간사회도 일정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사회 진화론자들은 아프리카 원주민이나 제3세계는 미개한 야만의 상태이고, 서구사회는 문명화되고 더 발전된 사회라고 여겼다. 그래서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서구인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적자생존과 마찬가지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더 우월한 서구인이 살아남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이런 논리를 펴며,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여러나라를 침략했고 식민지로 삼아서 약탈했다.
그러나 다윈이 말하는 진화란 '환경에 가장 적합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윈이 주장한 진화에는 어떠한 방향도 없으며, 더 낫거나 못한 것이 없다. 진화는 오로지 환경에 적합한지 여부에 따라 진행되었을 뿐이다.
아프리카의 원주민은 먹고살기에 충분할 만큼 사냥감과 열매가 풍부했다. 그런 환경이었기에 굳이 철도를 깔고 산업화될 필요가 없었을 뿐이다.
게다가 사회진화론의 논리는 생명체와 인간사회의 진화를 같다고 보았으므로 비과학적이다.
20세기 들어 '크로드 레비 스트로스' 같은 문화 인류학자들이 사회와 문화는 더 우월한 것이 없고, 다른 종류의 사회일 뿐이라며 문화의 다양성을 주장했다. 이로써 오늘날 사회진화론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과거 사회진화론자들이 다윈의 진화론을 끌어와서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요즘의 일부 사람들은 특정한 방면에 진화론을 대입시켜 본인의 주장을 피력하려는 경우를 종종 본다. 참으로 위험하고 앎의 깊이가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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