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하여
아테네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다수결로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했다. 하지만 다수결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결정했다고 해서,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소크라테스도 시민법정에서 다수결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지 않았는가?
또한 아테네는 국가의 중요한 직책을 여러명이 돌아가면서 맡거나, 제비뽑기로 뽑았다. 그러다 보니 통치자들의 전문성과 탁월성이 부족했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민주정을 중우정치, 즉 어리석은 대중들의 정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성과 현명함을 갖춘 철인이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으로 치면 엘리트 정치로, 뛰어난 통치자가 이끌고 나머지는 그를 따르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엘리트주의가 심각하다. 영국의 경우 정부, 의회, 법조, 기업 등에서 고위 관리층의 71%가 이튼 칼리지 등 명문 사립학교 출신이라고 한다. 그런데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통치는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엘리트 정치와는 좀 다르다. 그는 통치계급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명예(noblesse)만큼 의무(oblige)를 다해야 한다'는 뜻의 프랑스어이다. 명예와 특권을 누리는 만큼 책임과 도덕적인 의무에 충실하라는 말이다.
플라톤은 귀족자제 100명을 뽑아 외딴섬에서 혹독하게 훈련시킨 다음, 10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싸움을 붙여 가장 뛰어난 한명은 지도자로 삼고, 나머지 아홉명은 보좌로 삼자고 주장했다. 한편 플라톤은 통치계급의 부인공유제도 주장했다. 통치계급이 부인을 공유하면, 그 부인이 아기를 낳더라도 누구의 아기인지 알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욕구가 없어지며, 정치를 좀 더 공평하고 공정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통치 계급에 계 이처럼 강력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요구했다.
우리나라는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부패인식지수'에서 순위가 좋지 못하다. 이는 우리나라 사회 지도층이 그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영국의 왕자들은 전통적으로 해군에 입대하여 복무하는데, 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에 따른 것이다. 이런 전통에 따라 엘리자베스 2세도 제2차 세계대전 때 운전병으로 복무했다.
스웨덴이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가 된 데에는 한 재벌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큰 역할을 했다. 발렌베리 집안은 그들이 소유한 기업들이 스웨덴 국민총생산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부자이다. 하지만 1938년 이후로 이익의 85%를 세금으로 내고 있으며, 박물관·도서관·대학에 엄청난 액수를 기부한다.
우리나라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는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주식을 직원들에게 아주 싼 값으로 나누어 주었으며, 회사의 경영권을 자식이 아니라 전문 경영인에 넘겼고, 전 재산을 재단과 사회에 남겼다.
페이스북의 CEO이자 세계 10위 안에 드는 부자인 마크 주커버그는 자신이 가진 페이스북 지분의 99퍼센트(우리돈 약 52조원)를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빌게이츠나 워렌버핏도 재산의 대부분을 기부하기로 하고 재단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마크 주커버그 부부가 기부를 약속하면서 한 말이 있다.
"(내 딸이 사는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며, 내 딸과 어린이들 모두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줄 큰 책임을 느낀다."
이렇게 사회의 이익을 위해 솔선수범하고 의무를 다하는 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일 것이다.
요즘을 우리나라를 보면 남에게 바라는 행동에 대한 기대치는 높고, 본인이 해야할 행동에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그래서 "내로남불"이라는 용어가 가면 갈수록 많이 사용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지위가 높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할 때 대중들도 이를 본보기로 삼을 것이고, 그래야만 전체적으로 국민성과 국격이 함께 향상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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