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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문학, 사유

맥도날드와 경제의 합리성

by 나달리 2022. 2. 20.

맥도날드와 경제의 합리성



백화점은 한 건물 안에서 온갖 물건을 살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그런데 백화점에도 없는 것이 있다. 무엇일까?

바로 시계와 창문이다. 백화점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에 열중하라고 시계와 창문이 없다. 대신 백화점에는 거울이 많다.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고 쇼핑을 더 많이 하게끔 부추긴다.

백화점에 가면, 에스컬레이터는 눈에 잘 띄는 중앙에 있다.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각 층의 매장을 구경하게 된다. 그러면 쇼핑 충동을 느낄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 엘리베이터는 눈에 잘 안 띄는 구석에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원하는 층으로 곧바로 가 버리면 쇼핑 충동을 느낄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백화점의 식당은 맨 위층에 있다. 식사를 하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쇼핑 충동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이다.

백화점의 여성 의류매장은 남성 의류매장보다 아래층에 있다. 남성들은 쇼핑을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기에, 이왕 온 김에 매장이 조금 멀어도 구매한다. 반면, 여성들은 다른 것을 사러 왔다가 의류매장을 둘러보고 충동적으로 옷을 사기도 한다. 그래서 여성 의류매장을 가까운 곳에 둔다.

여성 의류매장에는 널찍하고 푹신한 소파가 있다. 여성들은 옷을 살 때 쇼핑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같이 온 남성이 피곤해하며 짜증을 내고 싸우기라도 한다면 쇼핑을 중단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함께 온 남성이 소파에 앉아 기다릴 수 있게 배려한다.

하지만 남성 의류매장에는 소파가 없다. 여성들은 남성을 따라다니며 옷을 골라주느라 앉아있을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는 주로 클래식 음악이 나온다. 천천히 오래 쇼핑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종종 가는 백화점에는 곳곳에 '경제의 합리성'이 스며들어 있다.



맥도날드 매장에는 3가지 규칙이 있다.
첫째, 30초 안에 음식을 주문하게 하라.
둘째, 5분 안에 음식이 나오게 하라.
셋째, 15분 안에 먹고 나가게 하라.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점의 의자는 보기에는 예쁘지만, 오래 앉아 있기에는 불편하다. 또 매장에는 경쾌하고 빠른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래야 손님들이 빨리 먹고 나가기 때문에 테이블 회전율이 높아진다.

맥도날드 매장에도 이처럼 '경제의 합리성' 원칙이 스며들어 있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판매하기 위해 합리화가 진행되었는데, 맥도날드의 시스템도 이러한 합리성이 아주 커진 것이다. 맥도날드 시스템은 더 적은 돈을 들여,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시스템이다.

'조지 리처'는 맥도날드 같은 시스템이 합리성과 효율성을 앞세우며, 우리 사회와 문화를 지배하는 현상을 '맥도날드화'라고 했다.

맥도날드화의 특징은 한마디로 대량 생산과 표준화된 시스템이다. 맥도날드에서는 모든 것이 표준화되어 있다. 맥도날드의 간판은 통일되어 있어서 멀리서 보더라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맥도날드에서 파는 햄버거와 음료는 거의 동일하며, 전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비슷한 품질의 맛을 예상할 수 있다.

맥도날드화의 특징인 표준화된 시스템과 매뉴얼화는 패스트푸드점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학교, 극장, 카페, 마트, 병원 등 사회 전체에 널리 퍼져 있다.

이를테면 종합병원에서는 효율성을 강조하면서 의료 서비스를 좀 더 빠르게 제공하고 있다. 병원에 가면 번호표를 뽑아 차례를 기다리고, 진료를 받고 난 뒤에는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가게끔 분업화되어 있다.

이런 합리화 과정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유익한 면도 있다. 하지만 무작정 합리성만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불합리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종합병원에서는 맥도날드화로 의료서비스를 더 빠르게 제공하고, 더 많은 환자를 진찰하게 되어 수익이 늘어났다. 하지만의사가 환자 한 명을 진료하는 시간이 고작 10분에 불과하다. 길어야 20분이고, 심지어 5분이 채 안 될 때도 있다.

그러니 종합병원 의사는 환자에게 증상을 찬찬히 물어보며 진료할 수 없고, 환자의 불안한 마음을 살펴줄 여력이 없다. 의사가 기계적으로 빠르게 진료하니, 자연히 환자도 의사를 신뢰하기가 어렵다.

맥도날드화는 목적과 수단을 뒤바꾸어 버린다. 의사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인데, 종합병원에서 효율성만 추구하다 보니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수단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료 현실에서는 사람은 뒤로 밀리고 효율성만이 강조된다. 맥도날드화는 이처럼 '인간 소외'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맥도날드 시스템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이지만 삶의 질을 나쁘게 만들 수 도 있다. 또한 합리성과 매뉴얼만 강조하다 보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줄어든다.

그렇다면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가 되면 맥도날드화가 사라질까?
어떤 사람들은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가 큰 흐름이 되면서 맥도날드화가 줄어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맥도날드식 생산 방법이 한계에 부딪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맥도날드화가 사라질 거라는 생각은 너무 단순한 사고방식이다.

골목에 자리 잡은 예쁘고 특색 있던 동네 카페들이 결국 경쟁에서 밀려 프랜차이즈 카페로 바뀌는 경우가 많다. 이는 맥도날드화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광주에 복합쇼핑몰을 만들겠다는 윤석열 대선후보의 공약에 대해 시민들과 영세상인들이 가지고 있는 다른 생각들을 보면서 경제의 합리성에 대한 장단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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