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인 사고를 갖는 일
철학적인 시선을 갖는다는 말의 의미를 짚어보자. 먼저 철학적 시선이라는 것,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인간이 지성적인 차원에서 발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시선을 의미한다. 그러한 시선은 우선 일반적인 시선보다 몇 단계 더 높다.
하나의 지식이 있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은 그 지식을 소유해서 재사용하거나 거기에 몰두하고 빠져든다. 그런데 이와 다르게 어떤 사람은 그 지식의 내용을 소유하고 정해진 효용성 안에 매몰되기 보다는 그 지식 자체의 맥락과 의미를 따지고, 그것이 세계 안에서 벌이는 작동과 기능을 보려고 한다. 철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둘 중 후자가 더 철학적 시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컴퓨터가 발명되자 어떤 사람은 그 컴퓨터를 사용하고 소유하는 일에 빠진다. 또 어떤 사람은 컴퓨터의 사용보다도 그 컴퓨터로 인해 전개될 새로운 변화의 맥락이나 달라질 사회의 흐름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역시 후자가 더 철학적 시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철학이 벌어지는 활동 공간 안에서도 비슷하게 이야기 할 수 있다. 즉 우리가 데카르트나 칸트를 공부한다고 할 때, 우선 그들이 남긴 철학적인 이론 체계를 숙지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철학적으로 데카르트나 칸트를 공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남긴 철학적인 내용을 열심히 숙지하는 것만으로 그들을 완전하게 공부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앞선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 즉 사유의 결과들을 숙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숙지한 내용들을 계속 퍼뜨리고, 또 그들이 남긴 철학적인 내용 그대로 따라 살아보는 것도 아니다.
핵심은 그들이 사용했던 시선의 높이에 동참하는 능력을 배양해서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행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철학이란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삶의 격을 철학적인 시선의 높이에서 결정하고 행위하는 것, 그 실천적 영역을 의미한다.
문제를 철학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철학이지, 철학적으로 해결된 문제의 결과들을 답습하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블록 장난감을 만들어 파는 레고(lego)라는 회사가 있다.
이 레고회사는 1990년대부터 빛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어린이 고객들이 전원만 켜면 바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장난감을 더 좋아한다고 분석하고, 비디오게임이나 조립 없이 바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쉬운 장난감을 많이 만들었었다. 그러나 이는 경영악화로 이어졌고, 결국 2004년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냈다.
레고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덴마크의 한 컨설팅회사를 찾아가서 해결책을 구하게 된다. 그 회사는 고객이 가져온 문제를 우선 철학적인 문제로 바꾸어서 접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레고는 원래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있었는데, 그 컨설팅 회사의 조언에 따라 기존의 질문을 다음과 같은 철학적 질문으로 바꾼다.
아이들에게 놀이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이들에게 놀이란 무엇인가?
레고는 이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아이들을 직접 관찰하고 인터뷰하고 따라다니면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들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제공된 즐거움도 좋아하지만,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어려운 기술을 익히고 이를 자랑하는 것에서도 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레고는 이때부터 힘도 더 들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리지만, 스스로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장난감인 블록 장난감을 개발하기에 이른다. 아이들이 세계에 대한 창의적 활동에 직접 참여하려 한다는 철학적 발견이 이룬 결과이다.
이것이 바로 철학적 접근이다. '아이들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할까?'라는 질문과 '아이들은 왜 놀까?"라는 질문 사이에 존재하는 높이의 차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레고 블록의 탄생과 같은 새로운 시선, 높은 시선이라는 것은 이미 익숙해진 것과의 결별이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까 철학을 한다는 것, 철학적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탁월한 높이의 시선을 갖는 것이라고 할 때, '자기파괴', '자기부정'의 과정은 필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 인문학, 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법에 대한 불복종과 이성적 행동 (0) | 2022.03.04 |
---|---|
과학에 대한 철학의 도움 (0) | 2022.03.02 |
직장인과 직업인 (0) | 2022.02.28 |
'나'로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법 (0) | 2022.02.26 |
일등이 아니라 일류 되기 (0) | 2022.02.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