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 대한 철학의 도움
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과학과 철학의 대립은 생각만큼 오래된 일이 아니다. 과학의 영역에 철학이 개입할 수 없다는 식의 생각은 18세기에 와서야 생겨난 것이다. 그 이전에는 이러한 문제 자체가 제기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근대 이전만 해도 과학과 철학을 한 사람의 학자가 동시에 다루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피타고라스는 수학자인 동시에 위대한 자연철학자였고, 최초의 수학적 증명을 한 사람은 플라톤이며, 미적분을 창시한 사람은 라이프니츠였다.
과학과 철학의 엄격한 분리는 근대에 이르러 과학적 지식이 확장되고 그 전문성이 증가하면서 발생한 사건일 뿐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철학 사이의 소통은 완전히 단절된 것일까?
과학은 정의상 객관적 사실에만 관심을 가진다. 과학은 사실을 재구성하고 그로부터 법칙을 만들어낸다. 과학은 어떠한 특정한 가치에도 결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유롭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의 '객관성'은 또한 과학이 가치의 문제에 대해 완전히 무능력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과학이 만들어낸 지식과 기술은 사용되는 즉시 인간사회에 관련이 되며 그 사회의 가치체계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과학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어떠한 답변도 제공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은 사뭇 이중적이다. 과학자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도움이 되는 좋은 사람(파스퇴르)일 수도 있고, 반대로 대재앙을 가져다주는 위험인물(프랑켄슈타인 박사)일 수도 있다.
원자력 에너지에서 유전자 연구에 이르기까지 과학이 인간의 운명에 점점 더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됨에 따라, 현대사회는 과학적 성과의 인간적·사회적 의미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일부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초래할 수도 있을 위험에 대해 과학자가 아닌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과 토론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철학은 과학에 개입할 수 있는데, 이는 철학의 전문분야가 다름 아닌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맥락에서 다양한 종류의 윤리위원회가 설립되는 것을 보아왔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로 구성된 이러한 조직의 임무는 과학적 연구를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그것이 일으킬 수 있는 위험을 과학자들과 사회에 미리 예고하는 것이다. 특히 유전자 조작이나 인간 복제 등의 신기술에 관해 이러한 철학적 논의는 점점 활발해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과학과 철학 양측의 이러한 협력은 과거에는 예상할 수 없었던 다양한 종류의 윤리적 문제에 대해 생산적 대화의 장을 열고 있다.
독일의 실존철학자 하이데거는 '과학은 사유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이때 하이데거는 과학이 스스로 탐구영역의 경계를 설정할 능력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려 했던 것이다.
지식의 진보는 과연 인류에게 심각한 위험을 가져다주기 전에는 그 한계를 알지 못할 것인가? 철학자들은 이러한 질문들을 과학자들이 스스로 제기하고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것이다.
'철학, 인문학, 사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름의 인식과 평등의 확보 (0) | 2022.03.05 |
---|---|
법에 대한 불복종과 이성적 행동 (0) | 2022.03.04 |
철학적인 사고를 갖는 일 (0) | 2022.03.01 |
직장인과 직업인 (0) | 2022.02.28 |
'나'로 살고 있는지 확인하는 법 (0) | 2022.02.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