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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문학, 사유

비인간적 행위란 무엇인가?

by 나달리 2022. 3. 11.

비인간적 행위란 무엇인가?

비인간적 행위
비인간적 행위

 

 

행위라는 단어에는 특정한 목적과 의도라는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는 동물이 아닌 인간에게만 해당된다. 그렇다면 어떠한 행위가 비인간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이 표현의 뜻은 인간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러한 행동은 진정한 인간의 모습과 어긋난다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선험적으로 정의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오히려 인간은 다른 생물과 달리 특정한 본성이나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얘기된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비교적 최근의 것으로서 고대에나 천여년간의 기독교 시대에는 오히려 인간의 필수적 특성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를 지키지 못하는 자는 정상적 인간이 아니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신들과 경쟁하려 하거나 반대로 동물의 수준으로 전락해 버리는 행위는 모두 비인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더 나아가 그리스 시민을 인간의 전형으로 여겼고, 이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제외했다. 그래서 야만족 출신의 노예는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으며,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들이 주인들과 접촉함으로써 조금이나마 인간화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 문명은 인간을 정의하는 규준을 변화시켰지만, 그러한 규준을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인간의 칭호를 박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야만인', 즉 이교도 유색인종은 세례를 받지 않았으므로 겉모습만 인간일 뿐이라 생각했으며, 그래서 서구 사회는 그들을 강제로라도 인간화시키려 했다.

 

현대문명은 그 결과를 익히 알고 있기에 인간의 선험적 특성을 논하는 대신, 어떤 행동을 비인간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언제나 특정한 사회적 맥락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서구 문명은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극도로 비인간적인 행위들에 대한 죄의식에 빠져 상대주의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이제 인간에게는 원초적 '본성'이란 없으며 인간은 단지 문화적 존재일 뿐이다. 또한 다양한 문화들 중 어느 것이 우월하고 어느 것이 열등한 지를 가늠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모든 문화가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며, 물질적·기술적 측면에서 뒤쳐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화일지라도, 예컨대 자연환경이나 다른 생물들에 대한 존중 같은 측면은 존경받아 마땅한 것이다.

 

많은 인류학 연구가 보급되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 놀랄 만큼 다양한 생활양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모든 각 문화권의 행동양식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도 배우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일종의 판단 정지를 하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상대주의를 극단적인 데로까지 밀어붙이는 것은 곤란하다. 다른 문화권 내 존재하는 명백한 폭력적 행동양식마저 그들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예컨대 우리가 비폭력적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데, 폭력적 문화를 가진 다른 나라 사람이 우리를 공격할 경우 그것을 비난해서도 안 되고 그들이 우리를 죽이려 해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따라서 큰 틀에서는 문화상대주의를 따르더라도, 모든 인간을 상대로 일반화할 수 없는 가치들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인간 전체를 존중하지 않는 모든 행위는 비인간적이며, 보편화될 수 없는 모든 행위 또한 비인간적이다.

 

슬프게도 이러한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태인 학살과 같은 인종 청소나 여자와 아이를 죽이는 공포정치는 인류 전체를 존중하지 않는 점에서 비인간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미성년자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여성 감금, 음핵 절제 같은 성차별 행위, 또 계급 차별 행위는 보편화될 수 없다는 점에서 비인간적이다.

 

타인 역시 존중받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는 행위는 비인간적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마저 어떤 동기에서,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설명해야 할까?

 

이러한 범죄의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그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한 TV토론에서, 러시아 침략의 동기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에 나의 생각을 적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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