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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문학, 사유

역사가가 객관적인 게 가능할까?

by 나달리 2022. 3. 8.

역사가가 객관적인 게 가능할까?

 

객관적
객관적

 

과학적 객관성이란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영역에 연루되지 않음을 의미하며, 이를 통해 과학자는 보편적으로 유효한 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 즉 과학자는 연구활동에 임할 때 개인적 생각이나 감정의 영향을 모두 배제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실 현대 과학에서 연구자가 연구영역에 개입할 경우(설사 익명으로 주관적이지 않게 개입한다 해도) 관찰과 분석의 결과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가장 엄밀한 분야에서도 절대적 객관성은 당연히 주어지는 상황이 아니라 추구해야 할 목표일 뿐이다. 더구나 인간의 실존과 관계되는 연구영역이라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

 

예부터 역사가가 어떤 시대에 속하지 않고 어떤 나라에도 속하지 않을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역사가는 무시간적 존재가 아니다. 역사가는 정의상 한 시대에 속한다. 다시 말해 한 사회의 특정한 상태, 그 사회 특유의 사고방식, 그 사회 내부에서 제기되는 여러 이념 중 하나에 속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가의 연구가 던지는 질문이 역사가가 속한 시대의 질문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역사가는 특정한 계급이나 집단에 속하므로 그에게는 개인적 신념도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가는 본질적으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사건을 연구대상으로 삼게 마련이다. 이 사건을 스스로 복원하고 재구성한다. 이 과정에서 역사가는 그 순간 입수할 수 있는 자료와 문서들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후대의 역사가는 다른 자료에 의존하여 다른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므로, 이러한 자료들의 제한성 역시 역사가의 객관성을 제약한다. 

 

자연과학은 가치중립적이고 인간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 객관적 사실에만 관심을 두지만 역사에 있어 모든 사건은 가치를 담고 있다.

 

그 사건을 행한 사람이 의도한 가치뿐 아니라 이러한 의도와 무관하게 그들의 행동 자체에도 독자적 가치가 담길 수 있다. 인간이 한 행동이나 인간사와 관련된 현상에서는 특정한 결과를 염두에 둔 방향 설정과 의도가 담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도가 얼마나 명철한 것인가 혹은 그 의도가 얼마나 정확히 수행되었는가와는 무관하게 인간의 행위에는 언제나 가치의 문제가 개입되어 있으며 이는 결코 날것의 사실로 환원될 수 없다.

 

역사를 이야기의 형태로 기술하는 행위는 필히 역사가 자신의 원칙들에 연결되는 법이다.

 

예컨대 1789년 7월 14일에 날씨가 더웠고 그 때문에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셨다고 말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바스티유 습격사건의 의미는 달라질 수밖에 없고, 이후 이어진 일련의 사건 역시 재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역사가는 자신의 이론적·이념적 원칙을 분명히 밝히고 그것을 존중해야 하며, 자기가 소홀히 취급한 자료들도 존재하고 있음을 알려야 한다. 또한 자기가 취급한 자료들을 중시했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완전히 중립적인, 다시 말해 이상적으로 객관적인 역사란 가능하지도 않고 우리의 관심을 끌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무의미한 사실만을 전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가는 자신의 근본적 주관성을 부인하지 않되, 자신의 연구에 대한 성실성과 경직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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